Midnight Blue


w. SZIMPATIKUS







01 ; 필수불가결











단씨나 좀 도와줄래요?”


“네, 갈게요. 

 




밤이 늦은 시각사무실의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솟았다 사라졌다.



 

 

조변호사님 사건이죠?”

 

 



곧 두 손에 커피를 들고 온 단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며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어떻게 알았어요네 맞아요... 아니 무슨 휴가를 일주일씩이나 써요뭐 그래요 쓸 수 있다 쳐요근데 왜 사건일지를 나한테 넘기는 건데요

 



 

단은 자연스레 한 손에 든 커피를 혜경에게 건냈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혜경의 투정어림을 받아주며 이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변호사님은 휴가 안 쓰세요로펌 직원들 중에 변호사님이랑 저이렇게 둘 남았어요휴가 안 쓴 사람.

 

아 그래요몰랐어요단씨는 휴가 언제 쓸 건데요?”


글쎄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사실 집보다 여기가 더 시원해요카페테리아도 있고저 작년에도 휴가 안 썼어요.”


왜요쉬고 싶지 않아요?”


내년에 왕창 쓰려구요로펌 휴가 3년제니까."


아- 근데 진짜 그러는 사람이 단씨 말고 또 있는 거예요?"

 

“없죠, 저희 로펌 빡세잖아요.”

 

 



단의 대답을 듣자 혜경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고 자신의 시선에 담긴 책상 위 두 개의 박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두 박스 다 조변호사님이 맡기신 사건인데하나는 자료가 별로 없는지 한손으로 들기에 충분히 가벼웠고 또 다른 하나는 무슨 자료가 그렇게 많은지 사무실까지 가져오는데 팔에 쥐가 날 정도였다문제는 두 개 중에 뭘 선택 하냐 그거였는데

 

 



단씨가 골라봐요.”

 

뭘요휴가 언제 쓸지?”

 

 



혜경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한손엔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멍하니 자신을 보고 있는 단에게 간단하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선택을 맡기기로 했다.

 

 



아뇨 이 두 박스 중에 아무거나 골라보라구요.”


아...... 저 고르는 거 잘 못해요.”

 

괜찮아요골라봐요 그냥 쉽게.”

 

서대표님이 두 사건 중에 하나만 맡으라고 하셨어요?”

 

네 맞아요이건 되게 가벼운데 저건 되게 무거워요

 

가볍다는 건 사건이 거의 끝날 기미가 보여서 조변호사님이 필요한 자료만 주신 걸 수도 있고그게 아니면 자료가 아예 없다는 말도 되겠네요반대는 자료가 많아서 판결까지 바로 갈 수 있는 거구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그럼 어떡하죠전 가벼운 거 선택하려고 했었거든요



 

 

혜경은 단의 예리함에 놀라기도 잠시, 또 다시 혼란에 빠지며 긴 한숨을 내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음 그럼 나머지 하나는 자동적으로저기 지나가는 이변호사님이 맡게 되겠네요.”

 

그렇겠죠아마.”

 

변호사님은 어떤 사건이 좋으신데요?”

 

아무거나요단씨가 골라주는 사건 맡을게요."


저 믿으세요나중에 딴말하시면 안돼요.”

 







 

단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책상 앞에 섰다혜경은 알겠다는 대답을 한 뒤 한발 물러서서 골똘히 생각하는 단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거요.”

 

이거요?”

 

이거요.”

 

왜요?”

 

그냥요그냥 이거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도 빨리 선택해버린 단에게 놀란 혜경이었다.

 

 



열어봐요괜찮은 사건일지도 모르잖아요.”

 

너무 막 고른 거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저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산다구요열어봐요 얼른



 

 

못미덥다는 표정의 혜경을 본 단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똑똑-


 



골랐어?”

 

어 골랐어아직 읽어보진 않았구

 

저거야?”

 

 

 


둔탁하지만 깔끔한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로펌 MJ의 서중원 대표중원은 단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반쯤 열려진 상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가 고른 거야? 김단씨가 도와주거나 대신 골라주거나 응그런 건 아니고?”

 



 

중원은 단의 얼굴 한번 혜경의 얼굴 한번을 번갈아 가며 되물었다단은 조심스레 사무실을 나가며 혜경을 향해 유리창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아냐내가 골랐어단씨가 고르면 안되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그냥 네가 맡을 사건인데 네가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중원은 상자에 가득 담겨있는 서류뭉치를 보면서 말했다.

 

 

 


살인사건이네용의자가 자백한쉽겠네 이건 사건은대신 이변호사가 좀 골치 아프겠지만.

 

무슨 사건인지 알아?”

 

아마 우리 이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가 될 수 있는 그런 사건그럼 남은 상자 하나는 내가 이변한테 갖다 줄게일 봐.”

 

응 고마워.”

 

 

 


중원은 알 수 없는 웃음을 띠며 수고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갔고 혜경은 책상을 향해 상자에 든 서류를 쏟아 부었다. ’사건번호 2016 고단 ***‘ ’증거물 목록‘ ’탄원서‘ ’피의자 자백진술서‘ 등등 공판에 필요한 자료를 찬찬히 읽어나가는 혜경이었다.

 

 

 


 

***

 





사람들이 빠져나간 적막한 로펌 MJ 건물엔 혜경의 사무실과 조사원인 단의 책상에만 불빛이 비춰지고 있을 뿐이었다단은 일에 열중하고 있는 혜경을 보며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생각인가 싶었지만 지금 이 시간이 단에게는 혜경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혜경의 얼굴을 눈에 담고 있는 중이었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말이.




 




단은 짧은 욕설과 함께 액정에 나타난 시간을 확인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혜경을 보며 그 모습이 참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유리로 둘러쌓인 사무실이 근무환경에 좋다는 생각과 함께. 조사 자료를 정리하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그 와중에도 눈은 혜경을 향해 있었다. 단은 옷 매무새를 만지며 혜경의 사무실 문을 두어번 두드렸다.





변호사님 퇴근 안하세요? 시간 늦었어요.





혜경은 책상위에 있는 시계를 한번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벌써 12시에요?”

 

퇴근하세요 이제피곤하잖아요.”

 

단씨는 왜 안가고 있었어요할 일 많이 남았어요?”

 

변호사님이 여기 있는데 제가 어떻게 먼저 가요.”

 

아... 고마워요같이 가요 태워줄게요.”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떠도는 차 안, 건물 앞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단은 조수석 창에 비친 혜경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덕분에 혜경은 단의 은근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고 더는 안되겠다 싶어 먼저 말을 꺼냈다.

 

 

 


단씨 집이 어디.....”

 

변호사님 운전 하는 거 예쁘시네요.”

 

?”

 

예전부터 든 생각이에요매력 있어요 운전하는 거.”

 

 


 

단은 언뜻 당황한 것 같은 혜경의 얼굴을 진득하게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집은 저 모퉁이 돌면 바로 나와요.”

 

“아... 가깝네요늦게 일어나도 되겠다.”

 

그것도 안 그래요변호사님 사건 맡으면 변호사님만큼 저희도 바빠지는데요 뭐

 

“그죠단씨 자료 빼내는 솜씨 정말 좋던데요어떻게 구하는 거예요?”

 

아니 뭐 그냥 경찰이나 검찰에 아는 사람도 있고..여차저차?”

 

그렇구나항상 고맙게 생각해요정말로요단씨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제 할 일이잖아요. 당연한거죠. 근데 칭찬 들으니까 기분 좋네요내일 봬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봐요.”


 


 

단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혜경에게 인사를 건넸고 곧이어 멀어져 가는 차가 보이지 않게 됐을 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번 사건은 제가 뭘 조사할 것도 없어요조변호사님이 다 정리한 채로 주셨어요 완벽히.”

 

그러게요 이렇게 쉽게 판결까지 가는 건 오랜만인 거 같네요.”

 

 

 

햇살이 쬐는 혜경의 사무실에 일에 찌들어 있던 단과 혜경의 가벼운 목소리가 허공에 퍼졌다기지개를 키던 혜경의 눈에 며칠 째 자신에게 얄미운 시비를 걸지 않는 이변호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단씨 제가 저번에 물어보려다 말았는데요."

 

뭔데요?”

 

조변호사님이 저희한테 주신 사건 말이에요이 사건 말고 다른 상자도 있었잖아요그 상자는 무슨 사건인지 혹시 알아요?”

 

아뇨 저도 몰라요근데 되게 복잡한 사건이라던데.”

 

그래요내가 골랐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단씨가 골라줘서 다행이에요.”

 

비밀이에요 그거.”

 

 

 

 

혜경은 느슨하게 자신의 입술 앞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웃으며 속삭이듯 말하는 단을 홀린듯 멍하니 쳐다보았다. 보면 볼 수록 빠져드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 무렵 듣고 있냐는 단에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네, 미안해요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그럼 저번에 중원이도 그렇고 다들 뭐 알고 있는 거죠?”

 

가르쳐 드리면 저랑 오늘 밥 같이 드실래요?"

 

밥이요저야 좋죠."

 

서중원 대표님 시험 같은 거예요원래 신입 변호사 들어오면 적응할 시기에 다른 변호사 통해서 대신 사건 맡게 하세요그 변호사님이 맡고 있는 가장 어려운 사건과 가장 쉽거나 완벽히 정리된 사건이렇게요.”

 

아 그럼 이변호사가 맡은 건...”

 

조변호사님이 맡은 사건 중에 제일 어려운 사건이겠죠.”

 

그래서 중원이가 그런 말을 했었구나그러면 단씨는 다 알고 골라준 거예요?”

 

변호사님 요즘 되게 바쁘셨잖아요좀 쉬셔야 할 것 같아서요.”

 



 

혜경은 서류를 뒤적이다 이내 자신에게 눈을 맞추며 말하는 단에게 고마운 마음과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고마워요이렇게 신경써줄지 몰랐는데,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단씨는 저한테 꼭 필요한 사람 같아.


 

 

 

혜경의 말에 단은 웃으며 대답했다.

 

 

 

 

"듣기 좋네요변호사님이 절 필요로 한다는 얘기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랑 일할 때만요다른 변호사님한테 지원 나갈 땐 뭔가 뺏기는 기분이 든다니까요단씨 일 너무 잘하는 거 같아요.”

 


 

 

커피를 너무 마셨나자신을 향해 따스하게 말하는 혜경을 보며 이게 고백인지 칭찬인지 헷갈리는 단이었다.

 


 

 

 

***






사거리 초밥집단과 혜경은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단씨 술 잘 마셔요?”

 

 

 


뜬금없는 혜경의 물음에 단은 물을 마시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못 마시진 않아요왜요?”

 

첫 사건 해결하기 전에 같이 바 갔었잖아요자주 가본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그냥 친구들이랑 몇 번? 거기 바텐더 솜씨가 좋거든요전 거기밖에 안가니까 익숙한 편이라 그런가 봐요변호사님은 술 잘 하세요?”

 

연수원 있을 때랑 이혼하고 나서는 꽤 마셨죠지금은 또 모르겠네요.”

 

 


 

평범한 대화 속단은 혜경의 이혼 얘기가 꽤나 달가웠다혜경이 그렇게 빨리 정리할 줄도 몰랐을뿐더러 자신에게 왠지 모를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허공에 젓가락질을 두어번 한 단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변호사님이랑 술 마시고 싶어요언제가 됐든지

 

사건 끝나면 축하주 먹으러 올래요?”


 

 

 

기대 없이 던진 얘기를 혜경이 덥썩 물자 당황한 건 단이었다집에 애들도 있지 않냐는 둥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겠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자 혜경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뭐싫으면 싫다고 하지안와도 돼요저 혼자 마실...”

 

술은 혼자 마시면 안돼요같이 마셔야지판결 나오면 바로 갈게요.”

 


 

 

혜경의 말을 다급하게 가로챈 단은 제 할 말을 한 뒤 젓가락 끝에 매달려있는 초밥을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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